샤워를 하면서 아주 여러가지 감상과 문장들이 머리 뒤통수를 지나쳤습니다.
어떤 날에는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글이 쓰고 싶은 날도 있는 법입니다.
계획과 목표를 뚜렷이 잡으니, 동기부여와 의지가 제대로 솟는 느낌입니다. 이런 의지를 인지하던 순간은 지금까지 몇 안되는 때였는데, 그 순간이 지금 마침 찾아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스스로의 성장이나 관리, 개발에 집중하게 되는 이 현상은 제게 필요하고 좋은 방향입니다.
또한 어떤 우울도 어느정도 낙천적으로 넘길 줄 아는 여유도 약 “한 줌” 생긴 듯 합니다. 열심히 한 번 지금에 집중해보자는 욕심을 조심스레 품어봅니다.
위기를 기회로 잡는 전략가, 제가 요새 되고 싶은 저의 모습 같습니다. 그런 김에 저 스스로를 좀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 험난한 구렁텅이였던, 정말 다채로운 사건사고를 해결하고 엉키고 얽매여진 매듭을 하나둘 풀어갔고, 쉽진 않았지만 주저앉고 싶었지만 끝내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어느정도는 정리된 저와 제 주변이 눈에 들어옵니다. 참으로 이번 한 해는, 제게 너무 잔인하기도, 또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도 했던 해였습니다.
저는 단어가 주는 한끗차이의 안정감을 참 좋아합니다. 하릴없이 흘러가는 듯 말하는 “산다” 보단 “살아간다” 가 더 주체성이 부여되어 듣기 좋듯,
우리의 언행과 생각의 창을 여는 단어는 정신과 행실에 연결되어 있으니, 감정을 표현할 때도 대체로 좋은 방향에서는 풍부하되 ‘짜증나’와 같은 단어는 최대한 입에 담으려 하지 않는것도 그 생각의 일환입니다.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감정은 증폭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이에 유사하게 적확한 단어 표현을 사용하였을 때의 그 희열감 또한 가히 대단합니다.
이 글의 카테고리를 ‘사랑의 농성’ 이라 지은 이유도 그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더 없어 보였습니다. 더이상 과거와 관련된 기억을 애써 회피하려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생각이 나면 생각이 나나보다 하며 오히려 실컷 떠들어 댈수도 있습니다. 과거 속 씁슬한 배신감, 사랑에의 회의, 가정이라는 안정감과 위안을 줬다 빼앗아간 그 사랑에 관해서는 아주 거대한 이야깃거리 하나를 제공해주었구나! 하면서 농성을 자처하는 행태를 취하는 겁니다.
하지만 덤덤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농성’ 이 가장 좋겠다 싶었습니다.
원망, 회상, 꼬리를 무슨 생각, 함께한 좋고 나쁜 순간, 사물에 서린 이야기, 음악, 장소, 음식 등, 수만가지 기억들이 각각의 순간에 두둥 자리를 꿰차고 저를 노려보고 있겠지만 좋게 생각되든 나쁘게 생각되든 어차피 되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며 겪은 내 일부이니 기억 속 한 자리를 차지해 시위하고 있겠지요. 그에 맞서 반대편에 앉아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그것들이 나를 좀먹게 놔두기 보단 일단 맞붙어 농성을 해보자 그냥. 싶은 것입니다. 어찌보면 나와의 농성 싸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고백스러운 글은 나의 정신 건강에 좋아 보입니다. 나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나 하나 만큼은 가지런해지려 해보렵니다.
가까운 듯 먼 그대여 (0) | 2024.10.18 |
---|---|
"모든 것은 다 태양때문이었다" (1) | 2024.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