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버멘쉬[1](독일어: Übermensch / 영어: Overman)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인간상이다.[2]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할 줄 알아서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외부의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니체는 인간이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야 된다고 말했지, 매번 위버멘쉬가 될 수 있다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의 밧줄 위에서 위버멘쉬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 즉, 삶이 무기력해서 그 권태를 극복하고자 하는 필요가 있을 때 그 '나아감'이 본능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지, 인간이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3]
이 말은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해 그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위버멘쉬는 자신이 세운 가치관에 의해 스스로 몰락하는 자다.[4] 동정에 기반을 둔 기존 도덕의 선악과 출발점이 다를 뿐 위버멘쉬는 자신을 제어하는 '자신만의' 엄격한 가치관[5]을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다. 위버멘쉬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강력한 자를 존중하는바, 이 강력한 자란 자신을 제어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말하고 침묵하는 법을 알고 있고, 자기 자신을 엄격하고 혹독하게 다루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엄격하고 혹독한 모든 것을 존경하는 자다. 그는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겁 많은 인간, 불안해하는 인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인간, 편협하고 의심 많은 인간, 비굴한 인간, 남에게 아첨하는 인간,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모든 이를 경멸한다.[6] 다시 말해, 위버멘쉬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7] 도리어 자신을 제어하는 크고 작은 자기 긍정의 엄격함으로 삶의 고통을 극복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 더 나아가 삶의 필연적인 면마저 어리숙하게라도 춤추고 노래하고 웃는 것으로써 극복할 줄 아는 건강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8]
한국어로는 초인(超人)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니체가 가리키는 바는 '물리적ㆍ물질적인 힘'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그 '창조적[9]인 힘'으로 끊임없이 몰아치는 가혹한 삶의 고통과 허무를 매번 노래하고 춤추는 마음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즉, 삶이 가혹하다고 해서 이상적인 종교나 도덕, 이념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혹하고 불합리한 삶을 있는 그대로 마주보고 그것을 극복하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심지어 그 고통을 기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자극제로 삼으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어 그대로 힘이 센 초능력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초인'이라는 번역은 오해의 여지가 있으므로, 최근에는 아예 원어 발음 그대로 "위버멘쉬"라고 번역하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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