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할아버지
설 이후로 당최 발이 그쪽으로 가지를 못하더라
더 늙고 쪼그라들어서 기운을 못차린 모습이 당장 닥친 현실인데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싫어서 모순적이게도 가지 않았어
이기적이게 나 하나 행복하자고 슬픈 현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어
그냥, 나 좋자고 피했어
그리고
또, 누군가의 안부를 물어볼까봐서, 사실 응- 잘지내.
이제는 하얀거짓말처럼 내게 일어난 사실들은 없던 일처럼
그냥 난 잘 그렇게 잘 지내는 것처럼 대답하는 사실 자체가 버거워서
그간 도망치듯 가지를 않았어
두달의 시간은 내겐 그저 두달이었는데
할아버지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게 가나봐
의욕도 기력도 체력도 없어져 더이상 내게 뭘 묻지도 않고
눈동자에 영혼이 없이 어적어적 밥을 삼키고나선 누워버리고
5분안에 있었던 모든 일을 이젠 까먹어 버리는 모습을 느끼자니
나는 고기가 고기인지도 모르겠고 내가 씹어삼키는 그 뭉터기가 어디로 넘어가는 지 모르겠더라,
그래도 울지 않았어 고모는 육십이 넘었어도 어린아이같이 물렁한 마음을 가졌고
어찌보면 철없어보이는 내가 돈이든 일처리든 뭐든, 내가 짊어져야 하는 거라, 내가 감당해야 하는 거라서.
나 여기선 어린애 하면 안되잖아.
미안해.
내가 아무것도 없는 아기 때부터 부모복이 없어 날 떠안아 길러준 이 사람들이
애지중지 어디가서 다치고 깨지고 상처입지 말라고
고이고이 날 키워냈고 이젠 시들해져 아기가 되어버렸는데
책임져야 하는 나는 정녕, 나 불행한 일에 허우적대느라
그리고 지금 행복하잡시고 할아버지를 그냥 뒷전에 뒀어
머리 검은 짐승을 거두는 게 아니라고 늘 말했었지 나 사춘기때.
맞나봐 진짜. 이렇게 은혜도 갚을줄 모르고 어리석고 이기적이게 커버린 검은 짐승이잖아
그리고 이 이기적인 짐승은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앞으로 나를 책임져줄 그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에
불안에 떨어, 세상에 혼자 남겨질까, 그래서 울타리를 만들려 애를 썼으나 내마음대로 되지 않는 생을 원망하기도 하며,
하나뿐인 손녀가 불행에 체해버려서 한동안 너무 힘겨웠어
내가 행복해야 하는데, 그래도 지금이라도 좀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러는 동안 할아버지의 머리는 더이상 작동을 안하게 됐네
마음을 표현해도 기억되지 않아 바람처럼 할아버지 뇌리엔 사라져 버리게 되어버렸지.
그럼에도 되뇌이는 건, 내가 아득바득 살려고 하는 이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날 그렇게 키워냈기 때문이야
아, 핏줄이란, 혈육이란.
더 이기적이어도 될까,
내가 살아있는 생에 떠나도,
난 담담히 받아들이고 내 생을 살게. 미안해. 사랑하고, 정말, 나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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